‘화천(貨泉)’. 중국 신(新)왕조에서 발행되어 통용되던 동전의 이름이다. 이 화천에서 가야의 행보와 관련된 뜻밖의 실마리가 발견된다.신(新)은 서기 8년 왕망이 한(漢)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다. 그는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하다가 15년만에 죽음을 맞아 신 왕조도 끝났다. 이어서 후한 시대가 시작된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금관가야를 맹주로 한 전기 가야연맹 국가들이 한참 융성하고 있을 때다.왕망은 그 짧은 통치기간 중 화폐개혁을 4회나 시도했고, 화천을 비롯해서 23종류의 화폐를 발행했다. 그 중에서 화천이 그나마 많이 사용됐던
가야의 항해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뜬금없는 질문 같이 들릴지 몰라도 해양국가 가야의 행보가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이해하는 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야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전체를 봐도 고대 항해술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드물다. 배의 규모에 대한 기록들은 있지만 속도에 대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에도 다른 사회의 예에 준해서 보자.[image1]서기 1세기, 가야가 해양국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바로 그 시기에 활동했던 저술가 플리니우스는 그의 저서 ‘자연의 역사’에서 당시 로마제국의 상
10여 년 전의 일이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반도 역사 얘기가 대화의 주제가 됐었다. 민요에도 조예가 깊은 전통춤꾼 김경란이 뜬금없이 “동해안을 따라 기마민족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동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비슷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구음(口音) 한 가락을 불러주는데, 잠깐 듣기만 해도 보통 우리 민요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리, 빠른 박자의 박진감은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하는 것 같았다.우리나라에서 말을 키운다면 제주도를 연상한다. 태백산맥 옆 좁은 땅
가야가 어떤 나라였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금까지 역사를 보던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가야에 대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내용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그 존재를 될 수 있는 한 축소하려는 의도로 구축되어 온 것이라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역사적 관점으로 보려 한다면, 가야는 언제까지나 미스터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어떤 집단이든 ‘루저’가 되는 순간부터 불리한 모습만 후대에 전해지게 되는 게 역사 기록의 속성이다.).근거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판단하려면, 비슷한 성
“가야는 도대체 어떤 나라였을까?”지난 겨울,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사 특별전 ‘가야본성’을 다녀온 한 기자가 쓴 기사는 이런 의문문으로 끝난다. 지금까지 가야에 대해 밝혀진 모든 것을 담았다고 자부하는 전시회를, 기자의 훈련된 날카로운 눈으로 보고 나서도 여전히 가야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image1]좁은 국토에서 생산된 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高)퀄리티 부장품, 음악을 사랑하는 평화로운 이미지와 대조적인 무기와 갑옷들, 그리고 눈으로 확인되는 순장 풍습, 작은 나라들의
이상하리만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한국 고대사. 그 중에서도 가야는 특히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조차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가야의 건국신화를 보자.하늘에서 내려온 여섯 개의 알에서 6명의 소년이 태어나 각각 가야연맹 소속 국가의 왕이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와 금관가야의 왕이 된 수로왕은 그로부터 6년 후 결혼을 한다. 수로왕의 신부는 뱃길로 2만5000리 떨어진 ‘아유타국’이라는, 이국 냄새 물씬 풍기는 나라에서 온 공주 ‘허황옥’이었다. 이들은 약 150년 간 해로하면서 10남 1
2009년 방영됐던 ‘선덕여왕’이라는 TV 드라마가 있다. 이 작품엔 ‘월천대사’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는 천문과 책력에 통달한 인물로,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나중에 첨성대를 설계한다. 천문학적 전문성을 갖춘 그는 가야 출신으로서 신라에 귀화한 사람으로 나온다.이 캐릭터는 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후 가야의 인재들이 신라 왕실에서 계속 일정한 역할을 했던 역사적 상황을 시사한다. 천문학은 그 중에서도 중요한 분야였을 것이다.[image1]고대사회에서 천문은 농사일에 있어서 중요한 지침을 주는 분야였다. 하
중국의 삼국시대는 지구 기후변화의 역사 속에서 수백 년의 주기로 찾아왔던 온난기, 그 중에서도 정점 부분에 해당하는 시기에 있었다. 이렇게 따뜻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더 따뜻하고 토질도 비옥했던 양쯔강 유역에 자리잡은 오나라에 목재가 궁했다? 그래서 기온이 더 낮은 편인 고구려와 요동에 저자세 외교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지난 회 이야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image1]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지난 연재 ‘목재의 권력 소국 비블로스가 이집트를 우습게 여긴 이유’ 편에서부터 제기헀던 두 번째 질문과 연동돼 있다. ‘오나라가 한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에는 목재가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양쯔강 중하류에 자리잡아, 활발한 해상활동을 펼치느라 배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목재를 잡아먹는 용도가 있었다. 철을 생산하는 일이었다.누가, 언제, 어디에서 제일 먼저 철을 제련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선 아직 정설이 없다. 한 두 세대 이전만 해도 기원전 11세기 근동의 히타이트(Hittite) 족이 철 제련을 시작한 게 세계로 확산됐으며, 기원전 8세기경에야 양쯔강 유역에 도착했다는 게 학계 주류 시각이었다.20세기 후반부터 세계 각지에
중국 삼국시대의 세 영웅 중 하나인 오나라 군주 손권은 한반도 소재 국가인 요동과 고구려에게, 상당히 몸을 낮추며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했었다. 왜 중원의 대국인 오나라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을 요동·고구려에 그렇게 대했을까? 왜 이 두 나라보다 거리상 훨씬 가까운 가야엔 접근하지 않았을까?지난 회는 이 두 질문으로 마무리됐다. 그 중 첫 번째 질문부터 답을 찾아보자.손권의 한반도 관련 행보에 대해 읽으면서 한 가지 연상되는 문서가 있다. 기원전 11세기 무렵 이집트 문서인 ‘웨나문 보고서(The Report o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저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학자 E.H.카의 말이다. 카는 역사기록이란 기록을 남기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기록을 보고 과거의 상황들을 이해하려 한다면, 먼저 어떤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그 기록을 남겼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역사인식 위에 환경사적인 관점을 더해 중국 역사서 ‘삼국지’를 살펴보면 한반도와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image1]중국의 삼국시대란 서기 200년대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세 나라가
한국의 고대사, 혹은 그 이전의 상고사(上古史)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당시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출토된 가야 유물을 보면 일상에서 사용한 용기에 한자를 새겨 넣은 것들이 있다. 생활용품에 한자를 새겨넣을 정도라면 한자 사용이 꽤 일반화되어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시의 글은 단 한 편도 남아있지 않다.이 때문일까. 가야는 종종 신화 속 나라로 여겨지곤 한다. 지난 겨울,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야본성’이라는 제목의 가야 유물전시회를 야심차게
중국 신화에서 사랑받는 영웅 캐릭터인 ‘예(羿)’는 종종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비교된다. 둘 다 출중한 무력과 곧은 성품의 소유자였으며,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하늘의 최고 지도자(옥황상제와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 밉보여서 갖은 고생을 하게 되는데, 그 고생의 내용은 대부분 인간 세상을 힘들게 만드는 요물과 괴수들을 퇴치하는 것이었다.두 영웅의 최후에도 공통점이 있다. 사랑했던 아내가 그들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가 반인반수 넷수스의 흉계를 곧이곧대로 믿어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옛이야기, ‘예(羿)의 전설’ 1막과 2막을 2회에 걸쳐서 보았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멋진 영웅으로 그려진 ‘예’라는 캐릭터는 지금으로부터 5만년 쯤 전, 아마도 지구자기장 격변으로 인한 생태적·사회적 혼란을 피해 긴 여정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다가 북쪽, 이어서 북동쪽으로 이동해 중국 내륙으로 들어온 이주집단으로 추정할 수 있다.지난 회에서도 봤지만, 이 전설의 마지막 이야기는 ‘예’가 흔들리며 몰락해가는 내용이다. 예가 아름다운 아내 항아를 서왕모에게 보내 불사약을 구해오게 했지만,
※이 칼럼은 앞편과 내용이 이어집니다.열 개의 태양이 난동을 부리는 혼란을 평정했지만, 그 과정에서 천제의 노여움을 사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예(羿). 지상에 와서도 꾸준히 사악한 존재를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면서 존경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항아(姮娥)가 있었지만, 강을 다스리는 신 하백(河伯)의 부인하고 외도했다고도 전해진다.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예는 항아를 서쪽 나라의 여신 서왕모(西王母)에게 보내 불사약을 구한다. 서왕모는 하나를 먹으면 장수하고 두 개를 먹으
옛날, 하늘나라 임금님에게는 태양 아들이 열 명 있었다. 매일 한 명씩 교대로 빛의 수레를 몰고 인간 세상의 하늘길을 달렸다. 그런데 어느 날 장난기 발동한 열 명의 아들이 한꺼번에 자신들의 수레를 몰고 나란히 인간 세상의 하늘에 등장했다. 갑자기 하늘에 뜬 열 개의 태양. 그 빛과 열이 너무 강해지자 지상의 초목들은 말라 죽고 인간들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다. 어수선한 세상을 틈타 온갖 요괴와 괴수들이 판을 쳤다.뒤늦게 이 상황을 알게 된 하늘나라 임금님은 ‘예(羿)’라는 신하를 불러 사태를 수습하도록 했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제노그래픽 프로젝트’. IBM과 내셔널지오그래피가 협력해서 2005년 런칭한 연구사업명이다. 세계 각지 사람들의 DNA 샘플을 기부받아서 인류 이동의 경로를 과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프로젝트인데, DNA 분석, 컴퓨터 시뮬레이션, CAD, 인공지능 등 각종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현재 약 45만 명이 참여 중인, 그야말로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과학-인문학 융합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 총관리자 미국의 스펜서 웰즈 박사는 말한다. “지금까지 쓰인 것 중 가장 위대한 역사서는 우리의 DNA 안에 감추어져 있다.”사실 DNA야말
“동(東)으로는 북태평양 오오츠크해 연안에서 서(西)로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우랄산맥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한 영역이 고구려 땅이었다.” 엄정한 과학의 소산인 고(古)천문학 지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이것을 사실(fact)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이전 연재 기사에서 서술한 논리에 따르면 이는 충분히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지형·기후·삼림 분포·하천 환경 등 생태학적 조건을 통합해서 고려한다면 말이다. 고구려인의 활동 시기는 기후적으로 봤을 때 온난기였다. 게다가 고구려 영토로 추정될 수 있는 광활한 지역에는
[image1]“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며 던져진 화두, 그 핵심은 한민족이 과거에 동아시아 대부분 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방대한 영토의 주인이었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입력해 출력한 우리 앞의 이 지도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고구려에서 출발해 보자. 지도를 보면 일식 현상 관측 중심지, 혹은 정치 중심지라고 추정되는 곳이 두 군데다. 강력한 국가의 중심지가 되기엔 위도가 너무 높은 곳에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으면 기온이 낮고 일조량이 적어 농업생산성이 떨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세월과 사실 왜곡을 뚫고, 진정한 역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엔 기록이 남지 않아 알 수 없었던 과거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첨단 과학 기술이 다양하게 발달했다.그중 한반도 역사에 관해서 지금까지 가장 잘 알려져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건 아마도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가 제시한 방법일 것이다. 박 교수의 2002년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는 한반도 고대 천문관측지도가 나오는데, 그는 고(古)천문학이라는 첨단의 과학기술적 방법론을 이용해 역사적 사실